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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 / 나비부인 中에서 - 허밍코러스

초 이 2006. 10. 20. 00:03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






      Filippa Giordano / Coro A Bocca Chiusa (나비부인 중 허밍코러스) 푸치니 오페라에는'나비 부인'과 '투란도트'는 동양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기독교를 가장 먼저 받아들였고 외국과의 문물을 최초로 도입한 나가사키. 푸치니의 '운명의 선율'과 동서양의 만남에서 부터 서양의 남자와 동양의 여성의 만남과 이별을 문화적 시각으로 견주어 보면 묘한 연산이 이루어짐을 느낀다. 그러나 그러한 만남이었건만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의 장소이기도 한 나가사키. 푸치니가 이곡을 쓰게 된 연유는 1900년 여름 런던에서 발라스코의 희곡 나비부인의 연극을 보고 성공을 예감한 때문이었다. 나비 부인'은 실화에 기초한 것으로 푸치니는 많은 이국적 일본 여인과 문화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일본 공사관을 방문하고 밀라노에 온 일본인들의 어감과 샤미센 음악 민요등 5음음계의 연구도 하여 이 작품 속에는 일본민요 "에치고사자" 와 일본국가 "키미가요"의 선율 등이 선보인 것은 곧 푸치니 자신의 감정이입이 일본여인 - 나비부인- 에 대해 또 동양 문화에 대해 충실했다는 것이 드러나있다. 1902년 초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꾸준한 연습과 연구도중 1903년 2일 23일에 자동차 사고로 대퇴부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푸치니는 끊임없이 이 작품을 밤낮으로 철저한 준비를 하여 끝내 3년여에 걸쳐「나비부인」을 완성했다. 리코르디(G. Ricordi) "음악과 음악가"란 저서에 의하면 1904년 2월 17일 밤에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될 당시를 잘 묘사하고 있다. 가족까지 동반하여 상연의성공을 예상했던 푸치니는 관중들의 심한 야유와 조소 함성으로 초연의 실패를 맛본다. 사실은 동양문화의 반감의 이유보다 어떠한 청중의 그러한 반감의 분위기를 몰고 간 것은 평소 그에게 평소 반감을 품은 푸치니의 반대파들의 조작극이라는 사실은 거의 모든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아니다. 다만 동서양 문화의 음악세계에서의 충돌 쯤으로 여기고 있음이다.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언제나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결과를 이끌어낼 위기에서의 시간이 판세를 뒤엎을 또는 주요인물을 매장시킬 충분한 누명을 씌울 모함을 짜는 이들의 편에 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날 밤의 프리마돈나였던 스톨티오에게 푸치니는 굳은 결심의 말로 언젠가 나비부인의 대성공을 예견하며 울고있는 스톨티오를 격려했다. 결국 첫날 밤 공연 후, 작품을 무대에서 내리고 3개월 후 토스카니니와의 만남으로 재수정 작업을 하여 1904년 5월 브레시아의 테아트로 그란데에서 개정초연됐을 때는 대성공을 했다. 런던공연 때는 더욱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고 1907년 2월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상연되었을 때 비로소 세계 최고의 오페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였고 그당시 카루소가 핑커톤으로 열연했다. 오늘날에는 '라보엠' . '토스카' . '나비부인' 이 푸치니의 3대 명작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 * Humming Chorus (02:59)
      *Un bel di vedremo Maria Callas(4.43)